“살인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한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영국으로 이주해 현지 로펌에서 활동 중인 저자가 읽기에도 진저리나는 끔찍한 살인 범죄들을 파고든다. 영국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들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한 사회적 맥락을 살피다 보면 무심코 넘기기 어렵다. 사회 저변에 깔린 증오와 차별, 무지와 편견이 잔혹한 범죄를 부른다는 점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더 끔찍한 것은 난민,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경제적 약자처럼 오직 ‘소수자’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살해를 당한 피해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추천사를 쓴 홍성수 교수의 말처럼 ‘차별해도 괜찮다’는 인식과 ‘죽여도 된다’는 인식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계층 간 격차가 일찌감치 견고하게 굳어진 영국 사회에서 벌어진 살인‘들’에 눈이 가는 이유다.
2016년 4월, 영국의 한 가정집에서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칼에 찔려 사망한 모녀. 뚜렷한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른 14세 동갑내기 소년·소녀는 범행을 은폐하거나 도망가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거실에서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보다 경찰에 체포됐다. 영국 언론은 이들을 ‘트와일라잇 살인자들’이라 불렀다. 이들에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란 무엇이었을까? 이들의 마음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한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영국으로 이주해 현지 로펌에서 활동 중인 저자가 읽기에도 진저리나는 끔찍한 살인 범죄들을 파고들었다. 영국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들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한 사회적 맥락을 살피다 보면 무심코 넘기기 어렵다. 사회 저변에 깔린 증오와 차별, 무지와 편견이 잔혹한 범죄를 부른다는 점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변심한 애인에게 황산을 끼얹기 전 인터넷에서 ‘황산을 마시면 죽는가’라는 문장을 검색해 놓고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오히려 죽은 애인이 자기를 해치려 했다며 피해자 행세를 한 범죄자에게는 고유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2장 ‘데이트 폭력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동네 아이 둘을 잇달아 죽이고 서로 상대가 시킨 것이라고 발뺌하는 소녀 범죄자들에게는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범인들이 겹쳐 보이는 식이다(4장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범죄가 있다’). 그런가 하면 아무 이유 없이 노숙자 여성을 살해하면서 이를 SNS로 생중계한 가해자는 마찬가지로 이유 없이 거리에서 폐지 줍던 할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 땅의 한 청년을 떠오르게 한다(4장 ‘빈곤과 폭력, 그 무한 루프’). 가정 내 아동학대가 의심돼 지역아동센터에 요보호 아동으로 등록됐지만 끝내 척추와 늑골이 부러져 숨진 상태로 발견된 17개월짜리 아이의 사연 또한 비슷한 경로로 안타깝게 숨져간 이 땅의 수많은 가정폭력 피해 아동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3장 ‘여덟 살 빅토리아와 ‘베이비P’의 죽음‘).
살인은 대개 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특히 그 사회가 소수인종, 성소수자, 난민, 이주자, 경제적 약자 등 이른바 소수자 집단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살인 범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차별당하면서 편견과 증오에 노출되는 집단은 폭력에 노출될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를 당한 피해자에게 ‘당할 만한 일을 저질렀던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법관, 주변 이웃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는다고 86차례나 신고 전화를 건 이민자의 도움 요청을 무시한 경찰 등 이 책에 등장하는 권력기관의 행태는 영국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살인은 사회가 품고 있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돈, 사람 또는 애정, 권력 그리고 인정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건들은 오늘도 쉼 없이 벌어지는 중이다.
이 책에는 총 24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혐오 범죄,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청소년 범죄, 무동기 범죄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살인 사건 에피소드들이다. 저자는 한국 독자들이 이들 에피소드를 읽으며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구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가’ ‘판결이 정당하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부당하다고 느끼는가’ ‘이런 일이 한국사회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반응이 있었을까’와 같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나는, 우리 사회는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배제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사법시험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다. 영국으로 건너와 법학석사를 받고 런던의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이런저런 글을 써왔고, 그게 계기가 돼 <시사IN> <서울신문> <여성신문> <중앙일보>에 기고를 했다.
“‘차별해도 괜찮다’는 인식과 ‘죽여도 된다’는 인식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트와일라잇 살인자들』에 등장하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은 소수 인종에 속하는 사람, 성소수자, 난민, 이주자, 정치적 소수파, 여성, 경제적 약자, 소수 종교의 신도 등이다. 이른바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들이다. 개인적인 이유보다는 그 소수자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살해를 당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피해자가 특정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편견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면, 실제 차별로 이어지게 되고, 차별당하는 집단은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차별당해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집단은 맞아도 되는 집단으로 간주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살인이며, 더 나아가서는 그 집단을 말살하자는 집단 살해(제노사이드)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있다.증오 범죄나 범죄의 환경적 요인을 설명하는 논문이나 책은 제법 많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어떤 학술 문헌보다도 범죄 발생의 메커니즘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홍성수(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저자는 한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영국으로 이주하여 현지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양쪽 사회의 법제도에 능통한 전문가인 저자가 영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범죄들의 전말을 소개한다. 읽다 보면 진저리가 쳐질 정도인데, 어느 순간 그 사건들이 멀리 떨어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들의 목록과 겹친다. 사회의 저변에 무지와 편견, 증오와 차별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을수록 잔혹한 범죄의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그 잔혹성이 극에 달한다는 인간 사회의 공통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사건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밝혀내면서 인간성과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끈질기게 던져야만 이러한 비극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브렉시트를 반대하며 공동체의 통합을 외치다가 살해당한 하원의원 조콕스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사회가 정말로 기억해야 할 것은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폭력이 아니라 희생과 통합’이기 때문이다.
- 정연순 (변호사,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경찰은 브룩스를 경찰서로 연행해 ‘취조’하기 시작했다…그가 마약을 거래하거나 갱단에 소속돼 있는 것은 아니냐고도 물었다. 브룩스는 그 스스로 무자비한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피해자일 뿐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방금 목격한 열여덟 살 청소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 1장 ‘흑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소년’ 중에서
사회의 가장 어두운 한 구석에서 그 스스로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던 남자가 거듭되는 절망과 자포자기 끝에 ‘유명해지기 위해서’, 역시 사회적으로 매우 취약한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나섰다. 그리고 겨우 넉 달 만에 다섯 명이나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죽여버릴 수 있었다.
- 1장 ‘그들은 가장 만만한 타깃이었다’ 중에서
월리스는 큰 소리로 웃고는 “내가 너를 가질 수 없으면, 아무도 너를 가질 수 없어”라고 말했다. 한국 언론은 이런 유형의 사건을 ‘데이트 폭력’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데이트’ 폭력이란 없다. 그저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한 범죄일 뿐이다.
- 2장 ‘데이트 폭력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중에서
딸 클레어는 죽기 전 아버지에게 애플턴이 전과가 있다는 걸 말했었다. 단지 부주의한 운전과 관련된 정도의 전과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애플턴이 딸에게 해준 설명이었고 딸은 애플턴의 말을 그저 믿었다. 실제 애플턴의 전과는 폭행, 협박, 스토킹 및 납치를 포함한 일련의 심각한 소위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것이었다.
- 2장 ‘애인의 폭력 전과를 조회할 권리’
피터는 지역의 아동보호 시스템에 요보호 아동으로 등록됐다. 그러나 아기는 이후에도 멍과 긁힌 상처와 타박상 때문에 여러 차례 병원을 드나들었다. 아동보호 담당 공무원이나 의료 관계자, 경찰은 피터가 숨지기 전까지 8개월 동안 60번 넘게 아기 피터를 만났다. 하지만 적극적 조처는 취해지지 않았다. 관계자들이 피터를 엄마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절차에 대한 법적 자문을 구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생모로부터 떼어내어 국가의 보호에 맡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 3장 ‘여덟 살 빅토리아와 ‘베이비 P’의 죽음’ 중에서
누구도 그 노숙자의 죽음에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살인자가 어린 소녀들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린 소녀들이 사람을 죽인 방식이 저토록 잔혹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 여자 어른을 수 시간 동안 때려서 결국 죽이고, 그 와중에 셀피를 찍고,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행태가 기성세대를 깜짝 놀라게 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죽음은 그저 흔한 죽음 중 하나로 여겨졌을 뿐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 4장 ‘빈곤과 폭력, 그 무한 루프’ 중에서
그는 가정의로 일하는 24년 동안 최소한 250명이 넘는 환자들을 죽였다.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살인범이다. 영국 언론이 그에게 붙인 별명은 ‘죽음의 의사(Dr Death)’였다. (…) 시프먼 사건은 영국 사회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고 영국의 의료 관행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아픈 사람을 살리는 것이 가장 큰 책무인 의사가, 자기가 담당하는 환자들을 그렇게나 많이, 더구나 이렇게나 오랫동안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죽일 수 있었다니 말이다.
- 5장 ‘평온한 죽음을 처방해드립니다’ 중에서
범인들은 릭비에 대하여 아무런 개인적인 악감정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릭비가 군인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희생자는 반드시 영국 군인이어야 했고, 군인이기만 하면 되었다. 범인들에게 군인은 ‘공정한 타깃’이었다. 그들은 범행 전날 ‘올바른 상대’를 고를 수 있도록 알라 신에게 기도했다고 했다.
- 5장 ‘알라가 영국 군인을 죽이라 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