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이 ‘철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가난을 엄벌하다>, 19개 국가에서 번역돼 호평

사회학자 로익 바캉의 <가난을 엄벌하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쇠퇴, 빈곤층의 증대를 감옥과 형벌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제자인 이 사회학자의 저서는 19개 언어로 번역돼 각국에서 호평을 받았다.

로익 바캉은 1980년대 이래 20년 동안 서구에서 감옥이 팽창하고, 강경한 형벌 정책이 부상하게 되는 이유와 그 양상을 점검하고 있다. 경제적 규제 완화, 노동 유연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복지국가의 쇠퇴를 동반했다. 복지국가의 해체와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는 필연적으로 빈곤층의 증가를 부른다. 계급·계층 구조가 불안정해지면서 도시가 와해될 위기가 생기자 이에 대한 돌파구로 찾은 것이 강경한 형벌 정책이다. 사회 보장에서 철수한 국가가 문제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잘못을 도시 외곽 빈민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하면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 이 책은 형벌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미국에서 탄생하고 세계에 수출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로익 바캉이 먼저 주목한 것은 미국의 뉴욕이었다. 1990년대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윌리엄 브래튼 뉴욕시 경찰국장은 ‘톨레랑스 제로’ 정책을 들고 나왔다. “범죄의 가장 확실한 발생 원인은 죄인 그 자신이다”라는 것이 윌리엄 브래튼의 지론이었다. 그는 기업이 이익 목표를 정하고 관리하듯이, 범죄 등록 건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뉴욕경찰국장은 매일 범죄건수를 챙기는 기업가처럼 경찰 업무를 지휘했다. 윌리엄 브래튼은 뉴욕의 치안 유지 예산을 대폭 늘렸다. 사회복지 분야 예산이 3분의 1 삭감되는 동안에 뉴욕의 치안 예산은 40퍼센트 인상되었다. 체포자 숫자가 늘어나자 법정에서 이와 관련한 재판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는 ‘법정 병목 현상’까지 벌어졌다. 사소한 경범죄에도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이 뉴욕의 ‘톨레랑스 제로’ 정책은 법 집행을 공격적으로 하는 형벌 정책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미국의 형벌국가화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교도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75년 38만 명 수준이던 것이 1985년 74만 명으로 늘었다가 1995년에 100만 5천여명, 1998년에 2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흑인이었다. 수감 인구가 15년 동안 세 배로 늘어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수감자 팽창을 감당하기 위해 교도소 관련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여기에 민영 교도소까지 급성장하게 되었다. 감옥 산업은 고용, 정년, 재정 수입이 보장되는 각광 산업이 되었다. 또한 보호관찰, 감시 체제, 범죄정보 및 유전자 정보 데이터화 등 형벌 저인망이 확장되었다.

‘작은 정부’와 ‘큰 감옥’

‘법과 질서’를 내세운 새로운 형벌주의가 유포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보수적 싱크탱크와 미디어 담론이었다. 1990년대 맨해튼연구소라는 싱크탱크가 이데올로기 전파 역할을 맡았다. 이 연구소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복지 비판의 1인자로 떠받들었던 찰스 머레이와 관련을 맺었다. 미국의 보수적 범죄학 대부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만든 ‘깨진 유리창’ 이론(일상생활의 소소한 무질서부터 바로잡아야 큰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을 대중화한 것도 이 맨해튼연구소였다. 조지 켈링은 캔자스시티 경찰국장 출신으로 맨해튼연구소의 일원이 된다. 1984년 마거릿 대처의 상담역이었던 앤서니 피셔와 나중에 CIA 국장을 지내는 윌리엄 케이시가 시장경제 원칙을 사회 문제 전반에 확대할 목적으로 설립한 이 연구소는 도시 최하층민들이 야기하는 ‘무질서’를 철저하게 진압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파했다. 이 연구소의 주장은 빈곤과 복지, 범죄에 관한 영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톨레랑스 제로’ 정책은 미국, 서유럽, 남미의 다른 도시들로 파급되었다. 빈민과 도시 외곽 거주민을 타깃으로 하는 이 ‘미국산’ 형벌 정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감소일로였던 유럽의 감옥 수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이러한 형벌 이데올로기의 확산에 따른 결과이다. 복지나 경제 영역에서의 ‘작은 정부’는 ‘큰 감옥’ 없이는 성립하지 못한다고 로익 바캉은 말한다. 바로 로익 바캉의 표현처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철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가난한 자를 감옥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로익 바캉에 따르면, 신형벌주의는 경제, 사회 분야의 신자유주의와 짝을 이루어 죄와 벌 분야에까지 경제적 사고와 시장 효과, 개인의 책임 의무라는 도그마를 확대시키고 있다. 로릭 바캉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 규제 완화와 형벌 규제 강화는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사회복지 투자 완화가 복지국가의 와해를 야기하자, 계층 구조가 불안해졌다. 불안전으로 초래될 사회 해체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형무 예산의 초과 투자가 요구된 것이다. 형무 인플레이션은 신성불가침한 자연적 운명이나 재앙이 아니다. 전반적인 민주주의 대토론을 거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결정할 것은 결정해야 하는 정치적 문화적 사안이다.” 국가가 ‘법과 질서’를 내세우면서 범죄를 강력하게 근절하겠다고 나선다고 무작정 박수칠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로익 바캉은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

프랑스 남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로익 바캉은 파리의 상업계 엘리트 양성기관인 HEC(공립경영대학원)에 입학했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피에르 부르디외의 강의를 듣고 사회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매주 콜레주드프랑스에서 부르디외의 강의를 듣고, 강의가 끝나면 부르디외의 집에까지 찾아가 열심히 강론을 들었다. 두 사람은 밀접한 사제관계로 발전했고, 그 대화와 공동 작업은 2002년 부르디외가 갑자기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부르디외가 죽은 후 로익 바캉은 사회학의 명문 시카고 대학으로 갔다. 그는 본래 다른 테마를 연구할 작정이었지만 캠퍼스에 인접한 흑인 게토를 목격하고 연구 주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는 게토를 멀리서 추상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려면 게토로 들어가 ‘밑바닥부터 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게토 지역의 복싱팀에 들어가 복싱을 하며 지역의 젊은이들과 어울렸다. <가난을 엄벌하다>의 헌사에 등장하는 아샹테는 로익 바캉의 스파링 파트너였다. 아샹테는 10대에 이미 6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복서로 성공하지 못하자 다시 감옥을 들락거렸다. 로익 바캉은 감옥에서 아샹테를 면회하거나 보석금을 지불하는 경험을 통해 게토에서 투옥되는 것이 너무나 흔한 일이고, 감옥과 게토는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절감했다. 가난한 게토 주민이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더욱 가난해지고, 그 가족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목격하면서 로익 바캉은 왜 이 같은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옥 조사에 뛰어들었다. 그는 ‘빈곤과 감옥’의 관계를 ‘글로벌화와 형벌국가의 도래’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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