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의 자전 소설과 같다”
작가 조정래가 생애 최초로 쓴 자전 에세이. 2009년 출간 이후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책이 작가의 등단 50주년을 맞아 리커버 특별판으로 다시 나왔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 250여 명에게서 '평소 조정래 작가에게 궁금했던 질문' 500여개를 받고, 이들 질문 가운데 84개 질문을 추려 그에 답하는 편지 형식으로 씌어졌다. 책은 크게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수많은 인물을 창조해낸 비결까지, 그의 소설을 읽고 문학을 꿈꾸는 청년이라면 한번쯤 떠올렸을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작가의 현대사 3부작 대하소설(<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얽힌 비화와 제작 노트 등도 풍부하게 만나볼 수 있다. 평생을 글감옥에 갇혀 산 작가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경지에서 풀어낸 인생론 또한 삶을 값지게 살아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황홀한 글감옥>은 작가 조정래가 현대사 3부작 대하소설(<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완결하고, 2009년 생애 최초로 쓴 자전 에세이다. 그로부터 십여 년간 독자의 큰 사랑을 받았던 책이 작가의 등단 50주년을 맞아 리커버 특별판으로 다시 나왔다(작가 조정래는 1970년 <현대문학> 6월호에 ‘누명’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씌어졌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 250여 명에게서 ‘평소 조정래 선생에게 궁금했던 질문’ 500여 개를 받았고, 이들 질문 가운데 84개 질문을 추려 그에 답하는 형식이다.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꽤 많은 강연을 해왔다. 그때마다 독자들이 아쉬워했던 것이 질문 시간 부족이었다. 어떤 독자들은 편지를 해오지만 거기에 일일이 답장을 쓰기도 어려웠다. 세 편에 걸친 긴 소설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은 많고, 그것을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하는 것은 늘 미안한 짐으로 남았다. 또 내 마음에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질문 하나가 있었다. ‘왜 자전 소설은 쓰지 않느냐’. 몇몇 출판사에서 그런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풀 수 있는 책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하고는 했었다. 그러나 새 작품을 쓸 일이 바빠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또한 그런 글을 쓰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닌 것 같기도 했던 것이다. …
(중략)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에게 5백여 가지의 질문을 받았다. 겹치는 것을 빼고,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을 간추린 것이 이 책에 수록된 84가지다. 그 84가지 질문은 대충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문학론·작품론·인생론. 그 응답들을 형식을 달리한 나의 자전 소설로 읽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현대사 3부작에 얽힌 비화와 제작 노트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크게 문학론·작품론·인생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책의 초반은 오랜 글쓰기 체험을 바탕으로 문학론과 창작실기론을 풀어놓았다.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수많은 인물을 창조해낸 비결까지 그의 소설을 읽고 문학을 꿈꾸는 청년이라면 한번쯤 떠올렸을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작가의 등단 50주년을 맞아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개정판도 새로 나오는데, 이들 현대사 3부작을 읽은 독자라면 그가 밝힌 비화와 제작 노트를 특히 흥미롭게 읽을 듯하다. 야뇨증이 심하던 어린 시절, 엄격한 아버지와의 관계, ‘소년 빨치산’ 박현채 선생의 격려와 도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두 번의 도움’, 소설가 최일남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욕 먹을 각오를 하고 밝힌’ 박태준 회장의 기부 사실 등은 작가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비화이다.
현대사 3부작에서 독자들이 스쳐 지나갔던 ‘인간 조정래’의 편린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태백산맥>의 독자들이 이번 자전 에세이를 읽으면 보물찾기나 퍼즐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태백산맥>에는 작가 조정래의 분신이 들어 있는데, 지금까지 그걸 찾아낸 독자가 몇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인생이란 스스로 한 발, 한 발 걸어야 하는 천리길’이라는 작가의 인생관과 엄격하되 흥미로운 자기관리·자기절제 에피소드 또한 책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1943년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단편집 『어떤 전설』『20년을 비가 내리는 땅』『황토』『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불놀이』『인간 연습』『사람의 탈』. 대하소설 『태백산맥』『아리랑』『한강』,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안중근』『한용운』『김구』『뱍태준』『세종대왕』『이순신』 등을 출간하였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화상, 동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동리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p.32 배기가스나 소음만 공해가 아닙니다. 남겨져야 할 필연을 자각하지 못하고 씌어지는 글들은 영혼의 공해물질이기 쉽습니다.
- 문학에서 언어란 무엇인가
p.37 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소설은 꼭 진실을 써야 하는가
p.49 수많은 문학도는 그 순서를 거꾸로 하거나, 한 가지를 경시해서 일을 그르칩니다. 어서어서 작가가 되고 싶은 다급한 마음에 많이 쓰고, 적당히 읽고,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마음 급함이 글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소설가가 되는 것도 오히려 더디게 방해합니다.
-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p.125 저는 성장해갈수록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증오를 느꼈고, 가엾고 억울하게 당하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일이 제 가슴에 정면으로 부딪쳐와 통증을 일으키고는 했습니다. 그건 누가 시켜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었고, 누가 말린다고 그렇게 안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 그것이 작가의식일 것입니다.
-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p.130 개성적인 인물을 많이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필연코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당신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이 말을 ‘최초이자 최후의 경고’로 받아들이십시오. “1인칭이 아니라 3인칭 소설을 써라.”
- 인물을 창조하거나 구성할 때의 방법은?
p.237 그들이 무심코 하는 말들은 귀가 번쩍 뜨이는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그 말들은 소설의 중추를 이루게 될 사회 갈등의 핵심이고, 그 원인 파악이면서, 명백한 입산 이유였습니다. 그 몇 마디 말은 사회과학 서적 어디에서도 찾아내기 어려운 진실의 무게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 『태백산맥』 취재는 어떻게 했는가?
p.249 가끔 독자들이 묻습니다. 『태백산맥』 중에서 어느 대목이 가장 쓰기 어려웠냐고. 그건 두말할 것 없이 ‘박현채 부분’이었습니다. 가장 쉬웠던 부분이 왈패 염상구 부분이었다면 박현채 부분은 그보다 열 배는 힘이 들었습니다.
- 『태백산맥』 소년 전사 조원제의 실제 모델은?
p.254 저는 대하소설 세 편을 써낸다는 것에 대해 그야말로 추호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리석을 만큼 제 자신을 믿는 데가 있었고, 경쟁이 아닌 제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실패가 없다는 확신을 저는 단순할 만큼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p.261 숨이 막힌다고요? 예, 이 세상의 모든 노동은 치열한 것을 요구할 뿐 감상적 기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노동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로 행. 불행이 갈립니다. 저는 그 숨 막히는 노동의 세월을 ‘글감옥’이라 표현했고, 그 노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 긴 소설을 끌고 가면서도 강한 흡입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p.441 진실을 지키고, 진실을 찾아가는 삶이란 현실적으로는 언제나 힘겹고 고달프며 손해보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우직스러움, 그 바보스러움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바꾸어왔습니다. 그 바보 같은 삶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순결한 영혼과 진정한 양심을 가진 사람만이 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 「어떤 솔거의 죽음」을 쓰게 된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