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할 준비

페미니즘을 찾아가는 다섯 개의 지도

이은의 · 윤정원 · 박선민 · 은유 · 오수경
시사IN북 펴냄


여성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이은의 · 윤정원 · 박선민 · 은유 · 오수경이 건네는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들을 위한 일상 생존 지침서

책소개

성희롱 사건에 휘말려 회사를 그만둔 뒤 로스쿨에 진학한 여성,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이 자기 몸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게 안타까웠던 여성,
워킹맘의 삶이 다 처절한 것은 아님을 북유럽을 돌아보며 알게 된 여성,
나를 들볶는 세상으로부터 자아를 지키기 위해 글쓰기를 선택한 여성,
드라마 보는 게 낙이었으나 어느 순간 그 불편함에 눈을 뜬 여성.

다섯 명의 여성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남역 사건 이후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것을 자각해 버린 또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다. 책의 출발은 시사주간지 <시사IN>에 연재된 동명의 칼럼을 통해서였다. ‘불편할 준비’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칼럼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필자들은 매주 쓸거리가 있을지 걱정했다고 한다. 기우였다. 쓸거리는 매주 차고 넘쳤다. 칼럼을 기획했던 장일호 <시사IN> 기자에 따르자면 “각을 세우고 보니 이 나라는 ‘여성은 국민이 아니다’ 라는 걸 매일같이 확인시켜주는 일투성이였다”(머리말 중에서).

그렇게 모인 필자들이 2018년 5월, 지면 밖으로 나와 독자들을 만났다. 강남역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연속강좌를 열게 된 것이다.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강좌에 참여한 이는 이은의(변호사), 윤정원(산부인과 의사), 박선민(국회 보좌관), 은유(작가), 오수경(자유기고가).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이 부딪치는 최전선에서 매일같이 아슬아슬한 일상을 견디며 살아온 이들은 현장에서 체득한 생존의 법칙을 동시대 여성들에게 아낌없이 털어놓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나를 지키며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상세한 지도와 구체적인 생존 매뉴얼을 전수한 것이다.

<불편할 준비-페미니즘을 찾아가는 다섯 개의 지도>는 그 결과물로 나온 책이다. 페미니즘을 다룬 좋은 책들이 쏟아지는 이즈음이지만, 일상에서 젠더 이슈에 부딪쳤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실전서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례로 이 책에는 “질에서 냄새가 나요” “상사가 자꾸 저한테 사랑한다며 접근하려 드는데 어떡해야 하나요?”처럼 어디에도 물을 수 없었던 여성들의 솔직한 질문과 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담겨 있다. 강의를 듣고 난 여성들이 “나 혼자 듣고 끝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얘기들이다”라고 입을 모았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성폭력·몸·정치·글쓰기·대중문화 다섯 가지 주제를 집중력 있게 파고 든 이 책이 일상 속의 페미니즘을 찾아가고자 하는 이들, 나아가 ‘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해 나 자신부터 기꺼이 ‘불편할 준비’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바란다.

저자 소개

이은의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 걸 못 참는 수다쟁이. 쉽고 편한 길을 두고도 궁금하면 못 참고 돌아 가기 일쑤인 사람. 자꾸만 전쟁통, 북새통의 한복판에 서게 되지만 실은 겁 많고 온순한 사람. ‘어쩌다보니’ 변호사·작가·강사로 사는 이 시대 최고의 우연이스트.

윤정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성폭력 피해자 진료와 성소수자 진료 등 여성주의 의료와 여성 건강권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오고 있다.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에서 <우리가 만드는 피임사전>을 출간했으며, 2018 양성평등주간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을 맡고 있고, 낙태죄 폐지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공저 <의사가 말하는 의사>가 있다.

박선민

2004년 민주노동당이 첫 국회의원을 배출한 이래 줄곧 진보 정당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다.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아 <복지국가 여행기-스웨덴을 가다>를 썼다. 의연, 은서, 은교 세 아이를 키우며 일과 가정이 조화로울 수 있는 복지 국가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가능성을 믿으며, 정당 안에서 정치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길 꿈꾼다.

은유

인터뷰, 르포르타주, 에세이 등 논픽션을 주로 쓰고 여기저기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한다.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폭력과 존엄 사이> <출판하는 마음>을 펴냈다.

오수경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거나 드라마를 보는 평범한 직장인.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로 드라마를 보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기독교 잡지에 칼럼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몇몇 매체에 드라마에 관해 글을 쓴 ‘성공한 덕후’다. 현재 <복음과 상황> <경향신문> <시사IN>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일 못 하는 사람 유니온>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차례

머리말 - 내 몫으로 주어진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

제1강 - 직장 내 성폭력에 대처하는 법
  • “그래도 널 제일 덜 만지잖아”
  • 성희롱 문제 제기하자 회사가 왕따 시켜
  • 벼랑 끝에 몰려 싸움을 시작하다
  • 싸움에서 이기고 로스쿨에 진학하다
  • 피해자를 괴롭히는 2차 피해 양상들
  • 사랑했다, 썸 타는 사이였다며 발뺌하는 가해자들
  • 머뭇거리지 말고 고소나 진정부터 하자
  • ‘미투’에서 ‘위드 유’를 거쳐 ‘세이브 투게더’까지

제2강 - 산부인과 사용 설명서 _생리에서 낙태죄까지
  • 진료실을 찾은 세 명의 여성 환자
  • 오늘도 대상화되는 여성의 몸, ‘싸이 갭’ ‘팬티 챌린지’
  • ‘옥시크린’이 질 세정제라고?
  • 여성의학에 스며든 가부장의 모습
  •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여성의 몸
  • 여성의 성性과 몸은 여성들의 것
  • 생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생리대는 어떤 걸 써야 하나요?
  • 이른바 ‘피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
  • 내 몸에 맞는 피임법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 성폭력을 당했을 때 취해야 하는 행동, 72시간, 1366
  • 임신중절을 받을 권리는 건강권이자 인권
  • 질의 응답

제3강 - 여성들이여, 정치 결사체를 조직하자
  • 초선 의원을 모시는 4선 보좌관
  • 농민 편 들어주는 국회의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 아이 키우며 농사짓다 여성 문제의식 키워
  • 신종플루 걸려서야 아기 돌볼 수 있었던 워킹맘
  • 성 평등과 시민운동이 이끈 스웨덴의 복지
  • 정치에서의 성 평등, 한국의 현실은?
  • 여성 대통령보다 여성을 대표하는 정치를
  • 국회 내 보좌관의 성 불평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
  • 여성 의원 비율, 어떻게 높일 것인가
  • 국무총리 산하 양성평등위 예산 연 930만 원
  • 여성 의제가 확산되는 정치를 위하여
  • 질의 응답

제4강 - 나로 살고 싶은 여성의 글쓰기
  • 글쓰기는 자기 서사를 만들어가는 일
  •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꿔내는 글쓰기
  • 무엇을 써야 할지는 글쓰기가 알려준다
  • 생각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 글쓰기의 핵심
  • 수영과 글쓰기의 공통점
  • “분노하고 있을 때야말로 글을 쓰기 가장 좋은 때다”
  • 여성을 비난하고 상품화하는 사회에서의 글쓰기
  • 글쓰기 제1원칙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져라
  • 질문 바꾸기와 관점 바꾸기
  •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점검 질문’ 다섯 가지
  • 질의 응답

제5강 - 한국 드라마에 페미니즘을
  • “드라마는 사회 문화의 재현이자 지향이다”
  • 김수현의 등장과 여성 작가들 전성시대
  • 80년대의 <사랑과 진실>, 90년대의 <질투>
  • 페미니즘과 계급 간 로맨스가 공존한 90년대
  • 외환위기 이후 가부장 사회의 붕괴 반영한 가족 드라마
  • 가부장제를 뚫고 나온 새로운 인류, 여성 노동자
  • 새로운 여성 공동체, 새로운 모성 그리고 새로운 가족까지
  • 드라마가 사회적 이슈와 만날 때
  • 여전히 남성 중심적 시각에 갇힌 드라마들
  • 사회적 개인, 합리적 대안자로서의 여성을 기대하며
  • 좋은 드라마는 질문하게 만든다
  • 질의 응답

책 속으로

머리말. 내몫으로 주어진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

출근길 신호등 앞에 서 있었다. 웬 아저씨가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가슴통 한 번 쥐고 싶다!” 놀란 와중에도 당장 내 옷부터 점검했다. 청남방. 면바지, 운동화…. 곧 신호가 바뀌었고, 그가 내게 물리적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어서 도망치듯 길을 건넜다. ‘그래, 이거보다 더한 일도 수없이 겪었잖아. 괜찮아, 아무 것도 아니야’ 스스로를 다독였다. 얼마 뒤 ‘강남역 사건’ 취재 차 통화하던 분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날의 경험을 말했다. “이런 ‘사소한 일’을 우리는 너무 많이 겪는 것 같아요.” 그분이 정색하며 이렇게 답했다.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거 아니야. 사소하지 않아.” 속수무책 눈물이 났다.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사건이 발생한 주에 휴가 중이었다. 밤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후배의 다정한 문자가 도착했다. “선배, 늦게 다니지 말아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야, 여자도 늦게 다닐 수 있고, 그래도 안전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야지. 우리가 숨으면 안 돼.” 그렇게 답하면서도 서울의 공기가 목을 조이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편집국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관련 기사가 들어가는지 궁금했다. 경찰 조사 발표가 날 때까지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조심하라’는 당부를 듣고 자랐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다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초래된 결과로 돌아왔다. “나 때문일까”라며 먼저 자책했다. “좀 조심하지”라는 타인의 말을 들으며 ‘내 잘못’으로 단정 지었다. 그러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사고는 생겼다. 살아갈수록 ‘살아남았다’라는 감각만 자꾸만 선명해졌다. 그저 운이 좋아서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셈하기도 귀찮은 언어적·물리적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하고도, 어쨌든 운이 좋아서 나는 아직 살아남았다. 강화길의 소설 <다른 사람>(한겨레출판, 2017)을 읽었을 때 이 문장 앞에 붙들렸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우리는 여자애들이었다. 해도 되는 것보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배운 여자애들. 된다는 말보다 안 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란 여자애들.”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나와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할 언어를 얻었다. 페미니즘은 내게 입이 되어주고, 목소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10여 년을 넘게 보낸 나 역시도 강남역 사건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내 뒤에 오는 여성들이 나보다는 덜 울퉁불퉁한 길을 걷길 바라게 됐다. 내 몫으로 주어진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내가 속한 매체가 갖고 있는 지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숙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필자를 구성할 때 한 번도 주요 고려사항이 되지 못했던 성별을 고민하게 됐다. 남성 필자 일색의 지면에 한 번도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페미니즘 이슈를 거의 매주 회의 테이블로 들고 갔다. 사드나 국정원 이슈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페미니즘 이슈의 중요성이 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꽤 자주 과잉이고, 유난이고, 반복이고, 심지어 ‘위험’하다고 판단되었다.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2016)에 이렇게 쓴다. “여성의 삶이 숫자나 통계상으로 개선되었다는 의견에는 잘못된 점이 없으나, 이 정도면 충분히 나아졌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우리가 더 이상 (젠더와 관련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노력하라. 변화에는 의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2017년 2월 <시사IN>에 연재를 시작한 ‘불편할 준비’는 그러한 노력과 고민 끝에 만들어졌다. 필자를 구성하는 일도, 편집국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8년차 커리어를 걸고 만들었다’는 말이 아주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다. 첫 필자 모임에서 ‘매주 쓸 게 있을까요?’라던 우리의 질문은 처음부터 기각됐다. 아이템은 넘쳐났다. 각을 세우고 보니 이 나라는 ‘여성은 국민이 아니다’라는 걸 매일같이 확인시켜주는 일투성이였다.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매주 썼다. 아무리 써도 바뀌지 않아서, 계속 쓸 수밖에 없었다.

2018년 5월에는 연재 코너 제목과 같은 이름의 유료 강연을 매주 열었다. ‘불편할 준비’ 필자를 비롯한 <시사IN> 여성 필자들이 강사로 나섰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나 역시 최근 쏟아지는 페미니즘 이슈 관련 책들을 보면서 한 번에 많이 먹어 체할 거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이 책 역시 당신 책상 위에서 ‘그렇고 그런’ 페미니즘 책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강의가 끝나고 후기를 받았을 때 수강생들이 입을 모아 ‘한 차례 강연으로만 끝내기에는 정말 아까운 이야기들이다’라고 했던 말에 의지해본다. 성폭력·몸·정치·글쓰기·대중문화를 페미니즘의 눈과 언어로 다시금 살펴보고 질문했던 경험이 여기 있다. 이은의, 윤정원, 박선민, 은유, 오수경 다섯 필자의 목소리가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각각의 지도가 되어 줄 것이다.

장일호 <시사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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