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게 길게 애틋하게

감염병 시대를 살아내는 법

변진경, 김명희, 임승관 지음 / 시사IN북 펴냄


“완벽한 안전? 그런 건 없다. 가늘고 길게 간다.”

K방역이라는 달콤한 수사에 휘둘리지 않고, 장밋빛 뉴 노멀의 전망에 현혹되지 않으면서도,
이 특별한 시기를 동료 인간과 어떻게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파고든 책.
팬데믹/마음건강/대구/교육/ 언론/외교/노동/공공의료/인권
세기적 재난 앞에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한 9개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팬데믹,
나아가 팬데믹 이후의 삶을 재설계하는 데 꼭 필요한 질문들을 모았다.

책소개

인류 역사상 세 번째로 팬데믹이 선언된 2020년 3월 11일. 기자와 의사, 연구원 세 사람이 만났다. 뉴스의 짧은 호흡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코로나19 사태의 ‘의 미’를 깊이 있게 읽어내기 위해서였다. 이 날 이들이 도달한 결론은 한 가지였다. “완벽한 방역? 그런 건 없다. 가늘고 길게 간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말들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확진자 수가 한 자리로 떨어졌다며 환호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긴장이 풀어졌다. 코로나 이 전(BC)의 익숙했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깨 닫게 된 것은 그 뒤 몇 차례 아찔한 고비가 다시 찾아 오면서다.

이 책은 코로나19 추이가 롤러코스터를 그리던 시기 진행된 아홉 번의 좌담을 엮어낸 결과물이다. 팬 데믹이 선언되던 날 만났던 세 사람은 그 뒤 매주 화 요일마다 ‘주간 코로나19’라고 이름 붙인 토론자리를 이어가며 코로나19가 바꿔놓은, 그리고 바꿔놓을 우 리 삶의 세부 영역들을 심도 있게 파고들었다. 당황스 럽고, 다급하고, 화나고, 안타까웠던 매 순간의 마음 과 감수성도 담론 틈틈이 생생하게 담았다.

팬데믹/마음건강/대구/교육/언론/외교/노동/공 공의료/인권. 9개 영역으로 나뉘어 진행된 좌담에 게 스트로 참여한 각 분야 13명의 전문가는 진료, 방역, 수업, 연구로 눈코 뜰 새 없는 와중에도 기꺼이 시간 을 쪼개 자신들의 지식을 나눠주었다. 학문적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려움, 무력감, 자포자기 따위에 사로잡힌 모든 평범한 이웃들에게 제대로 된 좋은 정 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전문가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 이 이들을 움직였다.

이 책에 코로나19 시대를 헤쳐 나갈 명쾌한 답이 제시돼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 책에는 좋은 질문 이 담겨 있다. ‘이 상황에서도 왜 클럽은 미어터질까’에서부터 ‘우리나라 코로나19 언론 보도를 보고 있으 면 왜 화가 날까’ ‘코로나19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 주의적 세계화를 끝낼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팬데믹 이후 궁금하고 답답했을 질문들이 각 장마다 의제로 등장한다.

그뿐 아니다. 자랑스러운 K 방역은 앞으로도 효 율적일 것인지, 이 와중에 수업시수를 채우고 내신 성 적을 산출하는 우리 공교육의 존재 가치란 과연 무엇 일지, 방역은 코로나 시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 선인지, 방역과 인권은 정말 양립 불가능한 것인 지 같은 예민한 주제에 대해서도 이 책은 질문 던지기 를 피하지 않는다. 공동 필자인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의 말마따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에 맞서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이라는 세기적 사건의 ‘의미’를 직시하고, 그 너머를 준비하는 책. 지금 이 순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시민들의 사유와 행동반경을 넓혀 줄 책이다.

책 속으로

회의를 하면 (다들) 물어봐요. “얼마나 가는 겁니까? 방역 열심히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습니까?” 나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말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방역 열심히 할수록 점점 늦게 끝납니다. 대신 가늘고 길게 갈 수 있습니다.”

p.30 팬데믹 — 완벽한 안전? 그런 건 없다 중에서

심각한 팬데믹,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이 일어났을 때에는 마지막 단계로 사람들이 무덤덤해지는 상태에 빠졌어요. 심각한 불안이 장기간 지속되면 무감각해져요. 예를 들면 학대를 심하게 당하는 아이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그냥 받아들이게 돼요. 그게 생존 전략이에요.

p.43 마음건강 — ‘뉴 노멀’ 시대의 적정 불안감 중에서

대구를 보면서 드는 생각 중 하나가, 과연 나머지 16개 시도는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단지 운이 좋아서 혹은 운이 나빠서 확률적으로 발생한 일들이고, 다른 데서 대구 같은 일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더 나아가면,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왜 우리에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p.67 대구 — 애증의 도시가 공동체에 던진 질문 중에서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저는 학교가 좀 더 힘든 사람, 약한 사람, 소수자를 위한 곳으로 강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가정에서 교육 잘 받고 사교육 많이 받는 학생은 학교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렇다면 이제 학교는 학교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학생을 위한 학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p.87~88 교육 — 2020년 봄, 학교 문이 닫혔다 중에서

한국 언론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발굴해서 제기하고, 정부 반대편에 서서 비판하고 정치적으로 투쟁하는 전통의 저력을 더 많이 쌓아왔어요.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 전통보다는 다른 자세가 더 필요해 보이는 거죠. 정부, 지자체, 의료진은 다 코로나19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언론은 직접적으로 방역도 안 하고 사람도 안 살리는데 옆에서 “못하고 있어, 왜 더 잘 못해?”라고 훈수만 두고 있다고 이용자 시각에서는 볼 수 있어요.

p.110~111 언론 — 믿을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면 중에서

새로운 질서 안에서 우리가 평화, 연대를 이야기하고 그런 걸 만들어낼 역량이 있는 국가임을 보여주고 그 가치를 앞에 내세우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성장’ ‘동력’ 이런 말이 언론에 너무 많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p.134 외교 — 각자도생 세계에 품격있게 맞서기 중에서

(코로나19 이후로도) 위험한 현장은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방역은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요.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일에 우리나라가 정말 잘할 수 있다는 게 이번에 증명되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정말 모든 자원을 투입해서 사람이 죽는 일을 막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일하다가 사람이 죽는 일을 막지는 못할까요.

p.146 노동 — 좋은 노동이 좋은 방역을 만든다 중에서

정부는 민간이 열심히 자원봉사도 하고 병상도 내줬다며 ‘공공과 민간 협력모델로 성공했다’고 모른 척 지나가려 하는데요. 민간 측은 사실 어쩔 수 없이 눈치 보고 한 거예요.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는 게 아니고요. 당장 2차 대유행이 오면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p.172 공공의료 — #덕분에 응원보다 시급한 과제들 중에서

〈장애의 역사〉에 이런 말이 나와요. “우리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 독립적)한 존재가 아니라 인터디펜던트(interdependent, 상호의존적) 존재이고, 이러한 상호 의존이 민주주의를 만들어왔다.” 지금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서로 의존하면서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p.205 인권 — 폐 끼쳐도 괜찮은 사회를 꿈꾸며 중에서

차례

  • 프롤로그 : 현자들과 넘은 아홉 고개
  • 1장 팬데믹 – 완벽한 안전? 그런 건 없다
  • 2장 마음건강 – ‘뉴 노멀’ 시대의 적정 불안감 with 박한선(서울대 인류학과 박사)
  • 3장 대구 – 애증의 도시가 공동체에 던진 질문 with 김동은(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 4장 교육 – 2020년 봄, 학교 문이 닫혔다 with 이윤승·김연민(교사)
  • 5장 언론 -믿을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면 with 김준일(〈뉴스톱〉 대표) 이소은(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 6장 외교 – 각자도생 세계에 품격 있게 맞서기 with 이준호(외교부 외교전략기획관)
  • 7장 노동 – 좋은 노동이 좋은 방역을 만든다 with 신광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박혜영(노무사)
  • 8장 보건의료 – #덕분에 응원보다 시급한 과제들 with 김창엽(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안병선(부산시 건강정책과장)
  • 9장 인권 – 폐 끼쳐도 괜찮은 사회를 꿈꾸며 with 김승섭(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서보경(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에필로그 : 우애와 연대의 시대 예상치 못한, 그러나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저자 소개

변진경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8년 〈시사IN〉 공채1기 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교육 불평등, 청년 빈곤, 아동 인 권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써오다가 코로나19를 만나 의료, 보건, 건강 분야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김명희

예방의학을 전공했고, 의과대학 조교수를 거쳐 2010년부터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일해오고 있다. 〈사회역 학〉 〈한국의 건강불평등〉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 같은 책 들에 번역자와 필자로 참여했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평등, 노동자 건강권, 공공보건의료 이슈의 해결 책을 찾기 위해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임승관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감염내과를 전공했다. 2008년부터 같은 대학에서 교원으로 일하다가 2018년 공 공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을 맡게 되었다. ‘지역사회’와 ‘건강’ 사이의 관계를 공부 중이다. 코 로나19 유행이 발생하면서 지방정부 요청으로 경기도 코로 나19 긴급대책단 공동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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